결론을 먼저 정하면 후손도 역사도 도망갈 곳이 없슴미다
친일 관련 글들을 보다 보니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상당히 자유분방함미다.
한쪽에서는 “후손에게 책임을 묻지는 말자”고 해놓고,
33살인데 조상 행적을 몰랐으면 무지한 것이고,
알았으면 알고도 이야기한 것이며,
사과하면 말뿐인 반성이고,
재산을 내놓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고,
연예인을 계속하면 돈도 많은데 왜 활동하느냐고 함미다.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부분이나 소속사의 성급한 사실무근 해명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쪄.
그런데 본인이 친일 행적을 미리 알았다는 증거도, 현재 재산이 그 행위로 형성됐다는 근거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33살”이라는 나이만 추가하면 재산 환원과 직업 포기까지 도출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슴미다.
33은 나이지 증거능력 +33 옵션이 아닌 거여요.
다른 한쪽에서는 근대적인 ‘민족’ 개념이 조선 후기까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민족의 반역자’라는 규정은 해방 이후 과거에 소급해 만든 개념이라고 함미다.
근대적 민족 개념이 19세기 말~20세기 초 형성됐다는 설명 자체는 역사학적으로 가능한 얘기게쪄.
그런데 박찬승의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의 형성」을 보면 국내에서는 1906년 이후 ‘민족’이라는 표현이 확산됐고, 1907년 이후에는 국권회복과 신국가 건설의 주체로 자리 잡았으며 식민지 시기 내내 독립운동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함미다.
더 직접적인 기록도 있슴미다.
1940년 한국광복군 자료에는 “나라의 죄인이요 민족의 반역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잡지 《광복》은 최남선·최린·이광수를 정확히 “민족의 반역자”라고 지칭함미다.
한국광복군 자료: https://db.history.go.kr/id/ij_014_0010_00010
《광복》 1941년 자료: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ij_014_0010_00050
그러니 전근대 조선을 현대 민족주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문제와, 이미 민족 개념이 현실 정치와 독립운동에서 작동하던 일제강점기 협력자를 평가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슴미까.
“민족의 반역자는 해방 이후 만들어졌다”는 설명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사용한 표현 때문에 성립하기 어려워 보임미다.
결국 한쪽은 결론에 33살이라는 숫자를 붙이고, 다른 한쪽은 영어 이론명과 ①~⑤를 붙였는데, 숫자와 목차가 추가됐다고 근거까지 자동 생성되는 것은 아니쪄.
역사를 경계하자면서 사료보다 결론이 먼저 달리고 있으면, 그건 역사 해석이라기보다 연표 역주행에 가깝지 않나 싶슴미다.
근데 사실 전 하영이 누군지 모르는거여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