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문화와 봉건사회
요즘들어 갑을 관련해서 얘기가 많군요.
비단 뉴스 뿐만 아니라 여기 게시판만 보더라도 하루 한 두 번은 다양한 갑들의 갑질(?)로 인해 너무 피곤하다는 투의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는거 보면 말이죠.
하다못해 인력업체 나부랭이들까지 마지막분 월급분 가지고 장난치는 갑질 스킬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죠.
왜 한국이란 나라는 항상 이런 피곤한 갑을 문화가 사회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는가?
요즘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많습니다. 아마 저 자신도 그간 대한민국 it라는 현장에서 앵벌이 생활 하면서 본의아니게 그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되니까 일종의 자각증상이 생겼다고나 할까 뭐 그렇습니다.
어떤분은 신자유주의 얘기를 하시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갑질은 많았을 거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농도가 더 농밀했을 겁니다.
제 생각엔 한국의 갑을문화의 특징은 그 자체가 봉건성이 매우 짙다는 겁니다.
봉건 이란 무엇인가요?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그 밑으로 피라미드식으로 층층히 쌓아올려진 먹이사슬 관계죠.
프랑스 혁명당시 프랑스 구체제가 이런식의 봉건체제 였죠. 왕 밑에 성직자, 귀족 그 밑으로 3신분. 아마 세계사 시간에 다 배우셨을 겁니다.
가장 큰 덩어리는 왕이 먹고 왕이 먹고 남은거 성직자, 귀족이 배채우고 그래도 남은 부스러기는 3신분들이 해치우는 식인데 갑을병정무로 통칭되는대한민국의 갑을문화와 개념적으로 아주 유사하죠.
갑 = 왕, 을 = 귀족이나 성직자, 병이나 무 이하는 그냥 제 3신분쯤으로 보면 그림이 나오죠.
저 당시 프랑스 구체제라는 것도 그냥 이해를 편하게 하기위해 단순하게 도식해서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좁은 의미의 봉건제는 아니고 봉건유제라고 합니다.
유제, 말 그대로 봉건제의 잔재, 부스러기들이죠. 이미 순정(?)이라고 할만한 좁은 의미의 봉건제는 서유럽에서도 15세기 이후로는 사실상 소멸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하나의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기에 인간사회에서 저런 체제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것은 전혀 놀랄일이 아니지만 서구사회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공산주의 대두 등을 겪으면서 이러한 모순을 깨달게 되고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구미각국에서는 사회구성원간(국가, 기업, 개인)의 사회활동에서는 계약이 우선되며 전근대적인 봉건적 인습이나 관행등을 통한 이익추구는 국가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원천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복지국가라는 것이 등장했고 힘 없는 개인이라도 국가나 거대기업을 상대로 기본권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구미사회에서 사회구성원간의 거래는 계약중심이며 서로간에 상호협조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수평적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무리한 단가인하를 요구한다거나 인사에 개입한다거나 접대를 요구하는 것등은 상상 할 수 없죠.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무조건 계약서에 나와있는대로만 이행하며 자의적 해석을 통한 이익추구는 불가능하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쌍방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협조 한다는 개념이 보편화 되어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달나라 여행이 멀지않았다고 하는 이 시점에서도 18세기 이전, 흔히 전근대라고 말하는 사회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중세적 잔재가 가득하다는 것에 비극이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국가권력은 개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 개입하지 않죠. 사실상 알면서도 묵인, 방조 합니다. 성장 노이로제에 걸려 성장률을 올리거나 기업으로부터 세수확보를 하자면 기업이나 지배계급의 편의를 더 봐주는 편이 더 좋다라는 관념이 권력상층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죠.
개입은 커녕 그와 반대로 권력 카르텔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힘 있는 계층이나 기업들과 오히려 야합 합니다.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협력업체간의 거래, 기업과 개인간의 거래에서 쌍방이 합의한 계약서보다 그간의 봉건적이며 인신구속적인 관행이 더 우선되며 능력보다 인맥이나 연줄 많은 사람이 더 인정받고 우대받습니다.
한국에서 계약이란 불평등한 관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감내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는 의미와 다를께 없죠.
결론을 말하자면 대한민국 개발자들이 갑을문화나 아웃소싱 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같은 이데올로기라기 보단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중세적 봉건적 유제(잔재)가 판치는 피라미드식 구조라는 것과 이를 막기위한 국가권력의 행사가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