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은 미친 짓이다
현재 일자리가 왜 부족한지, 청년 신입 일자리가 왜 없는지에 대해서 날카롭게 분석한 글이 보여 퍼왔습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출처: 이효승님 페이스북
채용은 미친 짓이다.
- 일자리가 없다고? 당연하지
◆ 요약
중소기업이 3년 동안 1인당 수억 원을 들여 길러낸 엔지니어를, 일할 만해지면 대기업이 데려간다. 대표들의 분노는 진짜지만, 떠나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직업 선택의 자유이고, 막아서 지키는 것은 처음부터 헌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빼가기가 아니라 구조다. 한때 신입을 수천 명씩 길러 사회로 내보내던 대기업이, 임금 격차가 벌어지자 경력 채용 비중을 크게 늘리며 다 자란 인재를 빨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다. 양성 비용은 여력 없는 중소가 떠안고, 그 과실은 여력 있는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길러봐야 내 사람이 안 되니 신입 뽑기를 점점 꺼린다. 청년 백수의 진짜 원인은 청년의 무능도 AI도 아니라, 사람을 기르는 일이 손해가 되도록 짜인 이 구조다. 끝까지 두면 신입이라는 입구가 닫힌다. 신입이 사라지면 빼올 경력자 풀도 결국 마른다. 그렇게 고용도 인구도 산업도 함께 마른다.
답은 막는 것이 아니라, 양성 비용을 한 회사에만 지우지 않고 사회가 나눠 지는 것이다. 공상이 아니다. 독일·대만·미국이 이미 그렇게 한다. 막는 데는 한 푼도 쓰지 말고, 기르는 데 그 돈을 넣어야 한다.
◆ 어느 대표의 한숨
요즘 중소 팹리스 대표들이 모이면 한숨이 같다.
"두 달 사이 네 명이 대기업으로 갔다." "지금까지 키워서 보낸 사람이 열 명이 넘는다." "남은 주니어들마저 흔들린다. 공채로, 그것도 경력 3년까지 문을 열어주니 안 흔들리는 게 이상하다." "기껏 3년 길러 일 좀 시킬 만하면 데려간다."
분노는 진짜다. 그래서 대표들은 제각기 카드를 꺼낸다. 누구는 전직동의서를 의무화하자 하고, 누구는 스포츠처럼 이적료를 받자 하고, 누구는 정부와 언론에 호소하자 한다. 절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절박함이 가리키는 해법들은 하나같이 빗나가 있다. 왜 빗나가는지를 알려면, 먼저 왜 채용이 멈췄는지부터 풀어야 한다.
◆ 왜 채용이 안 되는가
한때 인력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대기업이 신입을 수천 명씩 받아 교육시키고, 그중 일부가 시간이 지나며 중소·중견으로 흘러나갔다. 대기업이 비용을 대 인재를 길러내면 산업 전체가 낙수를 나눠 가졌다. 한때 한 대기업이 '반도체 사관학교'로 불린 이유다. 대기업은 산업의 펌프였다.
그 펌프가 지금 거꾸로 돈다. 신입 초봉이 오천만 원에서 억 단위로, 인센티브까지 더하면 수억 원에 이르자, 대기업은 3~4년을 길러야 쓸 수 있는 신입을 떠안기보다 이미 길러진 경력자를 데려오는 비중을 크게 늘렸다. 신입 채용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게추가 '기르기'에서 '데려오기'로 옮겨갔다. 양성소의 기능은 줄고 흡입구의 성격이 커졌다. 그리고 그 양성 부담은 점점 더 중소기업에 떠넘겨졌다.
숫자로 보면 잔인할 만큼 분명하다. 한 사람을 두는 데는 연봉만 드는 게 아니다. 4대보험 사용자 부담, 복리후생, 자리와 장비, 교육을 맡는 선배의 시간까지 더해지고, 여기에 신입이 제 몫을 못 하는 기간의 생산성 손실을 얹으면, 업계에서는 1인당 실부담을 흔히 연봉의 2.5배 안팎으로 잡는다. 그렇게 제 몫 하는 엔지니어로 서는 3년을 곱하면 1인당 수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 돈은 회계장부에 자산으로 잡히지도 않는다. 사람의 머릿속에 쌓였다가 그가 걸어 나가면 통째로 증발한다. 같은 수억 원이라도 대기업에겐 감당 가능한 투자지만, 중소기업에겐 회사의 1년 운명이다. 감당할 여력이 있는 쪽과 없는 쪽이 갈리면서, 양성은 여력 없는 쪽에 쏠리는 구조가 굳어졌다.
그러니 채용이 미친짓이 된다. 길러봐야 내 사람이 안 되는데 누가 기르겠는가. 흔히 청년이 눈이 높다, 끈기가 없다며 구직자를 탓하지만, 화살의 방향이 틀렸다. 청년이 모자라서 안 뽑는 게 아니다. 길러봐야 내 새끼가 안 되니까 안 뽑는 것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의 문제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AI가 사람을 자른다"는 진단도 절반은 틀렸다. AI가 있던 사람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양성의 손실 때문에 새 사람을 안 뽑는 것이다. 해고가 아니라 미채용이다. 일자리가 파괴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개별 기업에게 채용이 미친짓이 되는 순간, 그 미친짓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그 대가는 나라 전체의 청년 백수로 청구된다.
◆ 그러나 못 나가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빠져나가는 문을 막으면 될까. 못 막는다. 막아서도 안 된다.
더 좋은 대우와 비전을 찾아 떠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다. 기른 청년이 유능해져 더 큰 무대로 가는 것은 그 자체로 당연하고, 어떤 의미에선 길러준 보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줄 수 없는 갭은, 솔직히 메울 수 없다.
전직동의서 의무화 같은 카드가 헛된 이유가 여기 있다. 삼 년 한솥밥 먹은 직원이 결혼해야 한다며,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며 동의서를 들고 와 사인을 청하면, 어느 대표가 거절하겠는가. 거절하면 그날로 악덕이 되고, 해주면 회사가 빈다. 둘 다 대표가 지는 게임이다. 제도가 사람의 정을 이기리라 기대하는 순간 이미 틀린 것이고, 그런 종이는 대표를 두 번 죽일 뿐이다. 이적료 역시 마찬가지다. 근로계약에는 운동선수 같은 전속 기간이 없어, 떠나는 개인에게 돈을 강제하면 그것은 강제근로가 된다.
근본을 말하자면, 막아서 지키는 것은 처음부터 헌신이 아니었다. 결혼을 법으로 못 떠나게 묶으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감금이듯, 인력을 규제로 묶는 것은 언약이 아니라 속박이다. 가는 사람은 보내야 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막을 수 없다면 남는 길은 하나다. 양성의 비용을 한 회사에만 지우지 않고 사회가 나눠 지는 것. 이 한 문장이 이 글의 핵심이다. 막는 데는 한 푼도 쓰지 말고, 기르는 데 그 돈을 넣어야 한다. 길러도 손해가 아니게 되는 순간, 닫혔던 채용문은 알아서 열린다.
공상이 아니다. 이미 선진국은 이렇게 한다. 독일의 이원화 직업훈련은 기업이 훈련수당을 주고 정부가 직업학교를 책임지는 분담 구조다. 청년이 회사에 지원해 선발되는 자발적 제도이고, 훈련수당은 같은 일을 정식으로 할 때보다 낮다. 회사가 교육 비용을 대기 때문이며, 아무도 이를 착취라 부르지 않는다. 독일 기업의 3분의 1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중 다수가 수료생을 정규로 채용하며, 여기에 들어가는 공적 지출만 한 해 수조 원이다. 대만은 정부와 기업이 수억 달러를 공동 투자해 대학에 반도체 단과대학을 세웠고, 대표 기업은 해마다 거액을 십 년 넘게 약정했다. 미국도 정부의 반도체법 아래 기업·대학·지자체가 도제 프로그램의 재원을 함께 댄다. 양성을 사회가 분담한다는 발상은 우리만의 공상이 아니라, 앞선 나라들이 이미 굴리고 있는 표준이다.
한국에 옮긴다면 두 축이다. 한 축은 대기업을 다시 대규모 양성의 주체로 되돌리는 것이다. 한때 한 창업 회장이 수천 명을 길러 사회로 내보낸 사업보국이 가능했던 건 정신이 위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시절 대기업과 중소의 임금 격차가 작아 길러낸 사람이 흘러나가도 견딜 만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격차가 벌어져 셈법이 깨졌다. 평균만 봐도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60% 남짓이고, 반도체 첨단 기술직은 성과급까지 더하면 두세 배로 벌어진다. 그러니 정신에 호소할 게 아니라, 깨진 셈법을 제도가 받쳐야 한다. 대기업이 감당할 규모로 길러 그중 일부를 정규로 거두되, 교육 기간 급여는 시장이 정하는 선에서 시작하고 정부의 직업훈련 재원이 이를 분담한다. 여기에 "값싼 노동 악용"이라는 비난은 성립하지 않는다. 누구도 끌려오지 않고 제 발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안 가르치고 부려먹기만 하면 이듬해 지원자가 끊기고 기업 평판이 망가져 정작 쓸 인력을 못 건진다. 잘 가르칠 수밖에 없도록 시장이 먼저 강제하고, 최소한의 제도적 점검이 이를 거든다. 감독에 앞서 평판이 일차 품질을 보증하는 영역이다.
다른 한 축은, 그럼에도 누가 기르든 기른 값이 돌아오게 하는 보상이다. 길러낸 청년이 대기업으로 옮겨 더 높은 소득을 올리면, 그가 내는 세금도 함께 뛴다. 근로소득세는 누진 구조라, 연봉이 두세 배가 되면 세액은 그 이상으로 불어난다. 백수로 방치됐다면 세수 0원에 사회적 부담이었을 사람이 길러진 덕에 큰 납세자가 되는 것이니, 그 늘어난 몫의 일부를 길러낸 회사로 환류하는 것이다. 개별 회사 사이에 30년을 일일이 추적하자는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다. 양성 실적에 비례한 세액공제, 산업 차원의 인재 양성 기금처럼 집행 가능한 형태면 된다. 핵심은 방향이다. 지금의 고용 정책은 일자리를 '제공'한 자에게 상을 주지만, 상은 열매 딴 자가 아니라 씨 뿌리고 물 준 자가 받아야 옳다. 환원은 그 방향을 실현하는 여러 길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정답으로 못 박을 필요는 없다.
이 보상이 과하지 않은 이유는, 한 사람이 빠져나갈 때 회사가 잃는 것이 연봉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핵심 인력의 이탈은 돈이 비는 게 아니라 회사라는 유기체의 뇌 한 부분이 적출되는 일이다. 어느 공정에서 무엇이 깨졌는지, 그 고객이 왜 등을 돌렸는지, 도면 어디에도 적히지 않은 기억이 그와 함께 걸어 나간다. 그러니 키운 값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은 갈취가 아니라 최소한의 정산이다.
게다가 길러낸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갈수록 커진다. 엔지니어의 노동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쉰을 넘기면 현장을 떠났지만, 지금은 예순을 넘겨도 상당수가 현역으로 남고, 은퇴 뒤에도 자문과 컨설팅으로 오래 기여한다.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일하고 그 후로도 후배를 돕는다. 한 번의 양성이 거두는 평생의 산출이 그만큼 길어졌고, 그 긴 기간 그는 부담이 아니라 납세자로 살며 연금이 떠받쳐야 할 짐까지 줄인다. 백세 시대는 농담이 아니라 양성 투자의 회수 기간이 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흔한 반박 하나. 그런 교육이라면 직업훈련원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못 한다. 훈련원이 가르치는 것은 표준화된 일반 지식이지만, 현장의 진짜 역량은 수십 년 묵은 회사가 무수한 실패와 사고와 클레임을 거치며 몸에 새긴, 문서로 옮겨지지 않는 암묵지다. 그러니 중소기업이 하는 일은 '교육'이 아니라 '전수'다. 회사가 수십 년 쌓은 핵심 경쟁력 그 자체를 한 사람에게 부어 넣는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국가가 훈련원을 백 개 지어도 못 만드는 것을, 중소기업 한 곳이 신입 한 명에게 해낸다. 첨단 기술 전문가는 예외 없이 누군가의 헌신이 빚어낸 결과다. 스스로 자라는 아이는 없다. 환원이 정당한 진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유능한 엔지니어 한 명을 기르는 일은 인력 한 명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자리를 잡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키운다. 양성이 세운 것은 인력이 아니라 한 가정이고, 그 가정이 평생 만들어낼 소비와 납세와 다음 세대 전부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과실을 온 마을이 나눠 갖는다면, 양육의 비용도 길러낸 한 집에만 떠넘길 게 아니라 온 마을이 나눠 져야 한다. 청년 양성은 한 기업의 손익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다.
◆ 맺음말
만약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어디에 닿는가. 에두르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 보자.
신입을 안 뽑는 것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균형이다. 중소는 길러봐야 빼앗기니 신입 양성을 줄이고, 대기업은 당장 투입 가능한 경력자를 선호한다. 양쪽 모두에게 신입 양성이 점점 더 손해가 되는 이상, 도덕으로는 막을 수 없는 종착점이다. 그러나 경력자는 무한하지 않다. 모든 경력자는 한때 누군가 손해를 떠안고 뽑아준 신입이었다. 신입이라는 입구가 닫히면 빼올 경력자 풀도 시차를 두고 반드시 마른다. 빼오기는 그 자체로 제 식량을 끊는 일이다. 그리고 이 폐쇄는 고용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이 일의 입구를 못 찾으면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면 가정을 못 세우고, 가정이 없으면 아이가 없다. 고용의 입구와 인구의 입구가 같은 뿌리에서 함께 닫힌다.
이 셋이 맞물리면 한 방향으로만 도는 나선이 된다. 인재가 마르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세수가 줄고, 세수가 줄면 양성을 받칠 재정마저 사라져 입구는 더 닫힌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깊어지는 하강이다. 그 끝에는 인재도 산업도 인구도 세수도 함께 말라붙은 나라가 있다. 이 흐름이 수십 년 이어진다면, 그것을 망국이라 부르지 않을 다른 이름이 없다. 무서운 것은 이 사슬의 어느 단계에도 악인이 없다는 점이다. 떠나는 청년도, 빼오는 대기업도, 안 뽑는 중소도 저마다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망국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모두의 합리가 합산된 결과다. 바로 그래서 개인의 선의에 호소해선 못 막고, 오직 구조로만 끊을 수 있다.
채용은 미친짓이다. 합리만으로는 결코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친 줄 알고 하는 미친짓과 미친 줄 모르고 하는 미친짓은 다르다. 앞의 것은 헌신이고 뒤의 것은 도박이다. 이름 없는 졸업생을 3년 들여 엔지니어로 세운 일은 손익계산서로는 백 번 미친짓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일으켜 세운 거래 너머의 일이었다. 다만 개인의 헌신만으로 산업이 굴러가던 시대는 끝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나라의 채용문을, 끝내 나라의 미래를 닫고 있다면, 이제 그 미친짓을 떠받칠 구조를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독일도, 대만도, 미국도 이미 그 길을 간다. 늦출수록 입구는 좁아진다. 우물을 탓하는 사이, 나라가 마른다.
밭의 소출을 남김없이 거두지 말고 한 단을 남겨 두라던 옛 가르침이 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렇게 끝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24장 19절)
내 밭의 이삭을 나만 거두지 않고 남을 위해 남겨 두는 자에게,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의 복이 약속되었다. 청년을 길러 사회로 흘려보내는 일이 바로 그 이삭을 남기는 일이다.
◆ 근거자료
·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2024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 평균 연봉 7,396만 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 4,538만 원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61.4% 수준. 격차는 매년 확대 추세. (한국경영자총협회 '2025년 사업체 임금인상 특징 분석', 2026.3)
· 업종 편차: 금융·보험업 평균 9,387만 원으로 최고, 숙박·음식점업 3,175만 원으로 최저. IT는 대기업 신입 4,500만 원대, 중소 3,500만 원대. (위 보고서 및 통계청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 독일 이원화 직업훈련(Duale Ausbildung): 기업이 훈련수당 지급, 정부(주정부)가 직업학교 재원 부담의 분담 구조. 청년이 기업에 지원·선발되는 자발적 제도. 기업의 약 1/3이 참여, 그중 약 2/3가 수료생을 정규 채용. 직업훈련 관련 공적 지출 2017년 기준 약 68억 유로(약 10조 원). (독일 연방직업교육연구소 BIBB)
· 대만 반도체 인력 양성: 정부와 TSMC 등 기업이 최소 3억 달러를 공동 투자해 주요 대학에 반도체 대학원 신설. TSMC는 4개 대학에 연 1억 대만달러를 최소 10년 약정. 대학·기업 공동 커리큘럼 운영. (대만 교육부, 니케이아시아)
· 미국: 반도체법(CHIPS Act) 아래 TSMC가 애리조나에 500만 달러 규모 기술자 도제 프로그램 설립, 정부·지자체·자선재단이 재원 공동 부담. 커뮤니티칼리지·대학 연계 'earn while you learn' 모델. (미국 애리조나주 전략이니셔티브실 등)
· 엔지니어 노동수명: 과학·공학 인력의 풀타임 참여는 55~60세부터 감소하나, 60~64세의 74%, 65~69세의 47%가 여전히 노동시장에 잔류. 이 비율은 1993년 이후 지속 상승. 은퇴 후 컨설팅·자문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일반적. (미국 국립과학재단 NSF, 과학공학지표)
· 근로소득세 누진 구조: 우리 근로소득세는 직군이 아니라 소득에 따른 누진세율(6~45%). 같은 사람이 중소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해 연봉이 두세 배가 되면, 납부 세액은 누진 효과로 그 이상 증가. (소득세법)

◆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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