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졸업했습니다. 중2병이 무엇인가요?
생각해보면 나는 중2병 같은 건 껴들 틈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 있던 돈을 들고 장기 가출을 했던 게 인생의 첫 시련이자 사건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땐 그게 가능했던 시절이었고, 나는 실제로 그런 환경 속에 있었다.
어려서 나는 많이 아팠고 무당들을 자주 봤다. 산 깊숙한 절에도 여러 번 따라가 봤고, 굿판도 숱하게 봤다. 나 때문은 아니지만 70년대에 굿으로만 천만 원 넘게 썼다는데, 당시 지방 13평짜리 집 한 채가 200만 원이던 시절이니 말 다 했다. 무당들이 나도 이쁜 옷 입고 싶어 하면서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도 돌아가실 분은 돌아가셨다. 80년에 이사 간 집도 5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수 있다. 분명 자개농 위에 홍삼 박스가 여러 개 있었는데 다 사라져버렸다. 이삿날 작은 집으로 이사간다고 내가 화분들을 다 깨버렸다고 한다 못가져간다고..(그때 집이 마당포함해서 100평이었어요. 못 믿으시겠지만..)
가게들은 결의형제들이 다 가져가버리고 5천마눤 쓰고 돌려준다던 사촌이모는 서울로 튀었다고 한다.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결혼 몇번 더 했고 잘 살고 있는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집은 더 힘들어졌다. 그때 당시 압구정 현대가 5천이었다고 하니.. 정말 ㅆ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더 험했다.
고2 때는 야자 끝나고 새벽에 집에 가는데 동네 양아치들이 가방을 빼앗으려고 쫓아온 적이 있다. 필라쌕 책가방을 메고 전력 질주를 했고, 그 과정에서 가방 끈을 잡아당겨 쇠로 된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결국 철사로 댕댕 감아서 메고 다녔다.
고3 때는 더 심했다. 집 앞 4거리에서 깡패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야자 끝나고 귀가하던 고딩들 중 하필 나를 잡아 세우더니 “너 무슨 파냐”고 묻더라.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파출소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새벽에는 영업을 안하나 했다.
수능이 끝난 뒤, 선물로 받은 패딩 점퍼가 있었다. 다른 동네 양아치 셋이 팔짱 끼고 오더니 동네 뒷동산으로 끌고 가 그대로 빼앗아 갔다. 그때 인생 처음으로 칼을 들고 쫓아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 경찰서에 가도 “그런 놈들은 못 잡는다”고, 그냥 포기하라고 하더라.
그 필라 패딩은 아직도 생각난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운동권의 마지막 세대 친구들 덕분에 사복 경찰에게 검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놀고 먹던(술?) 대학생이었고,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졸업 후에는 피씨방 알바를 하며 살았고, 새벽에 퇴근하다가 야간 불심검문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니 머리 밀고 새벽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동네 신검을 받을 때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허벅지에 일심(一心) 한자를 엄지손가락만 하게 새겨 놓았더라. “짜식, 너 그렇게 살 줄 알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문신 하나 없이 살았다. 몸에 남은 건 안전사고로 생긴 칼자국과 흉터 몇 개뿐이다.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다.
살면서 다시 칼을 들었던 건 훨씬 뒤의 일이다. 이십대 중반에 회식 자리에서 30먹은 영업과장이 월급도 몇달째 안 나오는데 술에 취해 내 멱살을 잡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 고기 썰던 칼로 서빙 쟁반을 그어버리며 “까불지 말라”고 했다. 다음 날 그는 술 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얌전해지더라.
나보고 같이 보신탕 먹자던 동기 여자 사원은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면서 먼저 이직해 버렸다. 첫 출근날 옥상에서 내가 너무 많은 회사 정보를 알려줬더니 10흘도 안되어서 관두어버렸다. 내가 거기를 1년을 더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당히 이뻤는데..
IMF 때는 서울 길거리에서 만난 이쁜 누나들이 “집안 살릴 관상”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그 말이 계기가 됐는지, 그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제사돈을 드린 적은 없지만, 어릴 적 그런 세계를 너무 가까이서 봤기에 더 멀어지려고 했던 것 같다. (잘 살면 제삿돈 드릴려고 했다 솔직히..)
돌이켜보면, 내가 공부를 조금만 더 열심히 했어도 저런 환경에서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힘들어서 공부를 포기했고, 그 선택 때문에 인생은 더 힘들어졌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듯하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 환경에 둘러싸이지 않기 위해서, 그런 일들이 애초에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제때 했더라면 얼마나 다른 삶이었을까 싶다.
요즘은 문득문득 걱정이 된다. 중2병보다 더 심각한 아빠를, 과연 아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 착하게만 살다가 당한 기억이 더 많다. 그래도 근묵자흑은 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소설(???)입니다. 다시 생각만 해도 소름 돋네요.
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날, 환경의 중요성이 다시 크게 다가왔다.
세상 착해 보이는 아이들이 졸업을 했다. 그런데 다 컸는지 우는 아이 하나 없고, 여자 담임선생님과 졸업사진을 같이 찍는 남자 아이는 거의 없더라.
집에 돌아가신 담임선생님은 아마 우셨을 것 같다.
그 생각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중딩 입학 선물은 스마트기기는 포기하였습니다. 너무 비싼 것 같아서..
중딩 입학 선물 무엇이 좋을까요 가 지금 최대 고민이네요.
(박보검이 입고 있는 노스 패딩 교복은 이미 사주었습니다. 그러니 옷은 제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