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SI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페이스북에 꽤 생각할 만한 글이 보여 퍼왔습니다. OKKY에도 해당되는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요.
본 주제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꽤 있는데, 추후 댓글로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작은 SI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제, 오랫동안 IT 개발 외주를 해온 작은 SI 회사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두연^^ 에서 소개 받았다고 한다)
"SI 회사가 어떻게 하면 AX 전환을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SI 비즈니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짧은 통화였다. 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내내 찜찜했다. 명쾌하게 답을 못 줬다는 느낌. 그래서 다시 정리해봤다.
1. 이건 경쟁 심화가 아니다
먼저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한다.
바이브코딩의 등장은 단순히 "개발이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SI 산업의 수익 공식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다.
전통적인 SI 비즈니스의 공식은 단순했다.
<인력 × 시간 = 매출>
개발자를 많이 보유하고, 그들이 오래 일할수록 돈이 됐다. 그래서 SI 회사는 인력을 쌓았고, 프로젝트를 늘렸고, 유지보수 계약으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바이브코딩은 이 공식의 두 변수를 동시에 무너뜨린다.
"인력"의 가치가 떨어진다. "시간"도 줄어든다. 매출이 반 토막 나는 건 논리적 결과다. 더 무서운 건, 이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도구는 내년에 더 좋아질 것이고, 그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세진 게 아니다. 시장 자체가 작아지고 있다.
2. 잘못된 대응 세 가지
이런 상황에서 흔히 나오는 반응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모두 잘못된 방향이다.
"단가가 떨어지면 물량으로 메운다."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낮은 단가의 프로젝트를 더 많이 수주하면 조직은 더 바빠지고 더 지친다. 그리고 이익은 더 줄어든다.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셈이다.
"우리도 AI 도구 잘 씁니다."
이걸 차별화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바이브코딩 도구는 누구나 쓸 수 있다. "AI 활용 개발"을 내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기본기이지 경쟁력이 아니다.
"인력 구조는 그대로, 도구만 AI로 교체한다."
비용 구조는 그대로인데 매출은 줄어드는 구조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이 쌓인다. 조직의 관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흉내 내는 것은 변화가 아니다.
3.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전략을 논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진짜로 팔아온 게 뭔가?"
표면적으로는 개발 용역이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고객사의 업무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 요구사항을 현실적인 시스템으로 번역하는 판단력, 프로젝트가 틀어질 때 문제를 감지하고 조율하는 경험. 이런 것들이 진짜 자산이었다.
이 자산은 바이브코딩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문제는 SI 회사들이 스스로 이걸 "코딩"으로만 포장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니 코딩이 싸지면 자신도 같이 싸진다.
4. 세 가지 생존 방향
정체성을 재정의했다면, 이제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도구 공급자가 아닌, 환경 설계자가 된다
고객사들은 이제 직접 개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막힌다. AI 도구 선택, 보안 설정, 코드 품질 관리, 팀 내 워크플로우 표준화. 이게 다 난관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개발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고객사가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 도구 도입 컨설팅, AI 에이전트 팀 설계, 개발 거버넌스 수립. 수익 모델도 달라져야 한다. "몇 명이 몇 달 일했다"는 인력 기반 단가가 아니라, 셋업 완료, 팀 자립, 속도 개선 같은 명확한 결과물에 값을 매기는 방식이다. 컨설팅 수수료든 성과 기반 보수든, 고객이 지불하는 이유가 시간이 아니라 변화여야 한다.
이 방향은 기존 고객과의 신뢰 관계가 있을 때 가장 빠르게 작동한다.
2) 특정 산업의 전문가가 된다
범용 개발에서 나와야 한다. 의료, 법무, 물류, 제조, 교육. 어느 한 분야든, 그 산업의 업무 방식을 깊이 아는 집단으로 재포지셔닝하는 것이다.
바이브코딩으로 MVP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의 실제 원무 흐름을 아는 사람, 물류 창고의 현장 예외 케이스를 아는 사람은 흉내 내기 어렵다. 코딩 능력이 아니라 도메인 지식이 해자(moat)가 되는 구조다.
이 방향은 전환에 시간이 걸리지만, 자리를 잡으면 가장 방어력이 높다.
3) 프로덕트 컴퍼니로 전환한다
가장 어렵고, 가장 리스크가 크지만 생존력이 가장 높은 방향이다.
외주 프로젝트를 하면서 쌓아온 도메인 지식을 자사 제품으로 만드는 것. 외주로 반복해서 만들었던 기능이 있다면, 그건 시장 수요가 있다는 증거다. 그걸 제품화하는 것이다.
다만 이건 조직 문화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납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고방식이 "사용자"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전환에 실패하는 SI 회사가 많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근육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5.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세 방향 중 하나만 고르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조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특정 산업(버티컬)에 집중하면서 그 산업 고객사를 위한 환경 설계를 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로 작은 제품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경로. 이게 현실적으로 가장 무리 없는 전환 경로일 수 있다.
공통 조건은 하나다.
지금 당장 인력 구조와 매출 구조 사이의 갭을 직시해야 한다.
방향을 빨리 정해야 한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명쾌하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전략 프레임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특정 산업의 문제를 진짜로 풀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가.
고객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는 신념이 있는가.
자기 손으로 만든 제품이 세상에 쓰이는 걸 보고 싶다는 꿈이 있는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략은 그다음이다.
* 작은 SI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모든 산업에서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살아남는 조직은 더 빠른 곳이 아니라,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아는 곳이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후 이 페이지로 돌아와 바로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