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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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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개발자가 적성을 탄다는 이유

이곳 오키를 비롯해서 한국사람들을 만날때면 유달리 프로그래머가 다른 직종에 비해 "적성"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머라는 분야가 적성을 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제가 만난 컴싸 전공 학생들이나 현업 종사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구요.

저는 그 이유가 한국의 기형적인 국비학원 때문이라 봅니다. 수 개월에서 길어야 1년 미만의 과정을 통해 프로 레벨에서 일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과정이 보편화가 되다보니 이 과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극소수이고 적성 탄다는 얘기가 나올 수 밖에요.

통상적으로 컴퓨터 사이언스에서 졸업까지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은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10과목쯤 됩니다.

  • 프로그래밍 개론: 기초 문법부터 함수까지

  • 이산수학: 로직 게이트부터 수학적 귀납법과 같은 증명까지

  • OOP: 클래스부터 디자인 패턴까지

  • 초급 알고리즘/데이터구조: 포인터부터 그래프 기초까지

  • 중급 알고리즘: 그리디, DP, 그래프 좀더 + 알고리즘 디자인과 분석

  • 컴퓨터 구조: 레지스터 레벨에서의 컴퓨터가 동작하는 방법

  • OS: 캐쉬, 메모리, 디스크 레벨에서 컴퓨터가 동작하고 정보를 관리하는 방법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방법론, 클린 코딩, 디자인 패턴 좀더

여기에 나아가고자 하는 분야에 따라 DB, 네트워크, 분산처리, 인공지능, 데이터 사이언스 등 추가로 배워야 할게 더 있죠.

이 10여과목이 그래도 대학 레벨에서는 각각 최소 3-4학점짜리 과목들인데 이걸 1년내로 구겨넣어서 이쁘장한 포폴까지 만들어서 출하한다? 당연히 적성에 맞는 사람들만 살아남겠죠.

본인이 저렇게 수많은 공부 내용을 1년 이내에 압축해서 다 소화할 "적성"이 없다고 생각되시나요? 그럼 더 공부하면 됩니다. 진짜 어지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냥 기간 대비 수업 강도를 줄이고 기간을 늘리면 돼요.

여기서 많이 보이는 질문글의 유형중 하나가 본인이 XX살인데, X학년인데, XX해도 될까요? 인데, 그냥 하세요. 남들 눈치보느라 못배우고 세상에 나가는 것보다 좀더 제대로 배우고 나가는게 훨씬 낫습니다. 대학 4학년은 고3이 아닙니다. 다른 분야들은 취준 몇년씩 하는게 당연시 되다시피 하는데 왜 학원은 몇개월만에 취업을 안하면 안되는것처럼 조바심이 들까요?


제가 나이먹고 공부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 쉽지 않을거라 했습니다. 컴퓨터 공학은 적성에 맞아야 하는거고 젊은 애들 못따라가고 어쩌구.. 제가 잘 하는 걸 보니 이제 말이 바뀝니다. 역시 재능이야 어쩌구 하면서요. 그럴리가요.

제가 지금 다니는 대학의 프로그램은 2년 반, 20개월만에 졸업하고 취업할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저는 거길 인턴을 포함했다고 하지만 4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한 학기에 18학점씩 수강하면서 성적과 수업에 대한 이해를 다 잡을 만큼 "적성"이 맞지 않았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등록한 모든 학기에서 딱 3과목씩만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성적은 80점 초반 수준이구요. 만약 제가 5-6과목씩 들었으면 지금 구글은 커녕 졸업이 간당간당한 수준이겠죠.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분야가 쉽다는 얘기도 아니고, 진짜 적성이라는게 맞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반대로 진짜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긴 하겠죠. 하지만 그 중간, 충분한 기간을 들여서 열심히 하면 되는 그 바운더리는 생각보다 넓고, 그리고 다른 분들도 자주 말씀하시는 얘기지만 기초를 튼튼히 하면 할수록 향후에 더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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