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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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14: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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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25. 실리콘밸리의 개


25. 실리콘밸리의 개


애완견, 반려견, 강아지가 아닌 실리콘밸리의 개들에 관한 이야기.




실리콘밸리의 아침 출근길에는 개를 데리고 회사에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나 지하철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공원이나 풀밭을 걸으며 주인과 함께 출근하는 개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가끔 개를 데리고 회사에 가는데, 개와 함께 다니다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출근견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008년에 American Pet Products Association (APPA)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약 17%의 미국 회사, 주로 서부 테크 회사들이 개와 함께 일하는 업무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그 수가 더 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 관련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dog-friendly한 회사 환경 조성에 관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어 있고, 대학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예로 에 따르면, 센트럴미시간대학교에서 2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개와 함께 업무하는 환경에서 서로를 더 신뢰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한다.



개와 함께하는 회사 문화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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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개와 함께 출근하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매일 같이 회사 가는 것이 행복하고 집에 혼자 있을 개 걱정을 덜 수 있으니 오히려 회사에서 더 집중하며 일할 수 있어 좋다며 이런 복지를 중요시했다.

또 개는 없지만 개를 사랑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어서, 회사 갈 때 다른 개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와 함께 출근하는 루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늘 세 마리의 개들과 아침 인사를 한다. 코가 찌그러져 귀여운 벨라, 허리가 길고 윤기나는 털을 가진 제이크, 에너지 넘치는 아기 푸들 비쉬마.

건물 끝에 자리한 내 책상까지 걸어가는 동안 지나가는 직원들마다 강아지에게 인사하고 뽀뽀하고 쓰다듬어주니 사랑 듬뿍 행복한 출근길이다.

날씨가 좋은 날엔 점심 식사 후 루루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따라 길게 뻗은 산책길을 이십 분 정도 걷고나면 오후 근무 시간이 더욱 활기차진다.


개인적으로 개와 함께 하는 회사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더 쉽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 와서 다소 형식적으로 환영 인사를 주고 받을 수도 있는데, 개와 함께 있으니 상대방이 더 쉽게 말을 걸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직원 페이지에


‘말티즈 믹스 루루와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거야. 와서 루루를 쓰다듬어주면 엄청 좋아할거야.’


라고 루루를 소개했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다른 직원들의 모임에도 가입했다.

영어와 영미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화 소재가 제한되어 있는 외국인이어서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루루 덕분에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회사 인터뷰를 할 때 ‘이 회사에 꼭 들어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와 함께 출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실제로 회사에서도 사람을 뽑을 때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직원 복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실리콘밸리와 주변 지역 테크회사에 다니는 개들의 모습이다.



구글의 개 전용 공원 두글플렉스.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구글 캠퍼스에는 잔디밭에서 산책하고 일광욕을 하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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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근무하는 구글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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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건물 외벽을 덮고 있는 하얀 개 로고가 인상적인 징가. 징가는 회사 공동창업자 마크 핀커스의 아메리칸 불독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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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식사 시간에 개들을 묶어놓는 징가의 Barking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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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사원 프로파일에는 개들도 등록한다. 개 정직원들이다.



Sales Force 사무실 한 켠에는 개들과 함께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Puppyforce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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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우리의 친구 루퍼스' 페이지. 회사 초기부터 편집장과 수석개발자와 함께 출근했던 루퍼스를 직원으로 인정해주고, 회사에서 있었던 추억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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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가족, 루루



안락사 위기에 있었던 루루


5년 전, 우리 가족은 한국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오랫동안 입양되지 않아 안락사 위기에 있었던 개 루루를 입양했다. 어릴 때부터 주인한테 학대 당하고 맞아서 경찰에 의해서 구조된 루루는 한국의 보호소에서는 입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미국의 유기견 구조 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미국으로 임시 입양되었다. 우리 가족은 루루를 미국에서 구조 단체를 통해 정식으로 입양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온 루루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홀로 미국으로 건너온 루루는 아빠와 엄마의 회사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도, 다른 개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극복하고 이제는 쉽게 마음을 여는 명랑한 개가 되었다.

루루의 이런 변화에는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받은 동료들의 사랑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루루 덕분에 우리도 좋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고, 회사 생활은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개에 대한 인식


개는 소중한 가족이자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 곳에는 개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곳곳에 배어있다. 개가 아파서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회사에 이메일을 보내면, 가족이 아픈 것처럼 함께 걱정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메일이 오간다.

개를 일방적으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종이나 귀여움을 주는 인형처럼 보지 않고 친구로 대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 그들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개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개가 개답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키우는 개들은 거의 대부분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된 개들이고 (한국에서 입양이 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오는 개들도 있다), 개를 예쁘게 보이게 하는 것보다는, 정말 개가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제품들이 많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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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fido를 비롯한 여행 사이트들에는 개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우리가 개와 함께 간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개를 위한 간식과 물을 따로 준비해놓고 환영 메시지를 써 주었다.



Fort Funston에서 신난 루루


길을 가다보면 어떤 곳에는 문에 ‘service dogs only’라는 사인이 있는데, 이는 다른 개들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특수한 훈련을 받은 service dog들은 예외적으로 출입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자원봉사자들이 service dog을 훈련하고 정식 등록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면, 이 개들은 service dog 조끼를 입고 주인과 함께 거의 출입 제한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다.


길거리 상점 곳곳에는 개를 위한 물 그릇과 간식통이 놓여 있어 환영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2세 이하가 다니는 데이케어에도 개가 있는 곳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논다.

동네마다 dog park가 있어 목줄 없이 개들이 뛰어노는 공간도 있고, 태평양 해변가에 위치한 ‘Fort Funston’ 처럼 개들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고 수영하는 해변도 있다.


이런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off-leash area’ 사인이 없는 곳에서는 항상 목줄을 하고, 개들이 사람이나 다른 개를 공격하지 않도록 훈련시키며, 개가 머문 곳은 잘 치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훈련이 아직 덜 되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개들은 입마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때 먼저 길을 비켜준다.



시각장애자 등을 돕는 서비스 독은 특별히 존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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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처음 와서 친구의 귀여운 개를 보고 “puppy”라고 표현했더니 친구가 어리지 않다면서 “dog”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우리말에 “개"가 안 좋은 의미가 있어서 “강아지", “애견", “반려견" 이라는 대체 단어를 쓰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Puppy는 어린 강아지, Dog은 보통 개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아무런 부정적 느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실리콘밸리의 애견”이나 “실리콘밸리의 강아지들”이 아니고 “실리콘밸리의 개"로 하였다.


실리콘밸리에서의 개는 회사도 같이 다니고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정말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다.





글: Erin. 바이오텍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워킹맘.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https://brunch.co.kr/@svillustrated/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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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

  • Z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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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7 00:13:30 작성 2018-05-07 00:16:58 수정됨

    얼마전에 남의 개한테 물려죽었다는 뉴스가 생각나네요..


    저는 사무실에 개끌고 오는 거 극혐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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