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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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1: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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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주의 사회와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저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 잠식된 온라인 공간에 대해 심한 환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일도 줄어들었고 - 아마도 이 글이 최근 몇 년 사이 처음으로 쓰는 정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나아가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 사이트도 점점 발걸음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전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분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반대로 그러한 이유 한 가지 만으로 다른 사람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사람들 자체를 싫어하는데, 문제는 진영논리는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대량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진영논리는 정치 사회적 토론의 피로감을 더하는 이외에도 훨씬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데, 진영주의로 인해 일종의 '정치적 환원주의'라고 부를 법한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즉, 진영논리에 잠식된 사회에서는 정치 사회에 관한 어떠한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래서 너는 어느 당을 찍을 건데?'라는 질문으로 결론이 수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진영논리는 그 정의에서부터 상대 진영의 논리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견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을 배제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적 환원주의는 결국 어떠한 논의를 시작해도 결론은 왜 상대 진영과는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며 오직 선거에서 쳐부수는 것만이 사회 정의를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재확인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그러니 우리 모두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혹은 "원래 정치라는 건 다 그렇다" 정도로 쉽게 결론을 내버린다면, 아마도 이 글 역시 진영주의로 인한 피로감을 재확인 시키는 이상의 의미를 갖긴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가 생각하는 진영논리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해볼까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정치적 환원주의,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진영논리는 모두 의회 중심적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봅니다. 사실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론임에도 비슷한 주장을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민주주의나 보통선거, 또는 의회중심주의 등의 개념에 대해 우리가 오랜 기간 역사적 중요성과 이념적 가치를 부여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회중심적 대의민주주의의 치명적인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이상적인 의회민주주의 국가에 A와 B 두 가지 정당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의 가치관, 혹은 정치 사회적 지향에 비추어 볼 때, 만일 A 정당은 부의 재분배 문제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B 정당은 외교에 대해 보다 바람직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면 과연 그 유권자는 어떤 기준으로 선거에서 A, 혹은 B 정당을 지지할 지 결정할 수 있을까요?

과연 부의 재분배와 외교가 같은 척도의 저울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개념일까요? 경제를 살리려면 성소수자의 권리는 무시할 수 있다거나, 반대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면 경제는 포기해도 되는 것인가요?

다원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가치의 축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회이고, 서로 다른 가치의 축은 다른 축과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박정희는 군사 반란으로 집권했으니 마이너스 50점이고 경제 기반을 구축했으니 플러스 80점해서 총점이 30점으로 좋은 대통령이다"와 같은 식의 비교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당중심의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바로 이러한 억지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든 국민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아무리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가 있어도 결국 중요한 건 선거에서 어느 당에 투표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선거에서 실제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은 잘해야 2-3개에 불과하고, 유권자들은 그 중 하나의 정당을 4-5년에 한 번씩 고르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정치 사회적 지향을 표현할 것을 강요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체제가 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지는 명확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물론 결선투표제나 의원내각제를 도입한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이 몇 년에 한 번씩 너댓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 한 그러한 대안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긴 힘들 것입니다.

한편, 정당 중심적인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면 앞서 말한 정치적 환원주의나 진영논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감을 느끼는 것은 동물 중에서는 유인원과 인간이 유일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무엇이 올바르고 그렇지 않은지를 끊임없이 따지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그 정의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A 또는 B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의 모든 가치관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를 정당화 시킬 것입니다.

쉽게말해, 정치 사회적 입장을 표현하는 방법이 A 또는 B 정당 중 하나를 골라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컨대 왜 자신이 고른 A 정당이 B에 비해 모든 면에서 정의로운지에 대한 논리를 스스로 만들고 믿어 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이 없다면 앞서 말한대로, 예컨대 "성소수자 권리 보호를 내세우는 A 정당을 지지하셨는데, 그럼 경제는 어떻게 되도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접했을 때 떳떳하게 "네"라고 대답하거나, 질문 자체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보다는 차라리 A 정당을 고르는 게 경제 측면에서도 정의라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것이 훨씬 간편하고 기분도 좋은 길이니까요.

그런 방식으로 진영이 생겨나면 비슷한 선택을 한 부류는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그러한 논리를 만들어내고 공유합니다. 그러한 논리가 쌓이면 일종의 도그마나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성격을 띄게 되고, 처음 정치 사회적 논쟁에 눈을 뜨게된 신참자들은 딱 정당의 갯수 만큼 존재하는 그러한 거대한 프레임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게 됩니다. 신참자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비슷한 가치 체계를 쌓아올릴 능력도, 그러한 체계 뒷편의 모순을 짚어낼 통찰력도 없는 상황이니 결국 선택은 "난 정치엔 관심 없어"라고 선언하고 '생각없는 사람'으로 양 진영의 비웃음을 받던지 아니면 어느 한 쪽을 택해서 그러한 도그마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일원이 되는 것, 둘 중의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가 그렇듯이, 이러한 부류의 진영은 대립하는 다른 진영의 극단적 특성을 먹이삼아 자신들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집단에나 극단적이고 예의없고 무식한 부류는 있게 나름이고, 보통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런 부류들이기 십상입니다. 어느 한 진영의 가치관에 강하게 공감한다면 아마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인가는 반대 진영의 극단론자들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꼈던 경험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한 쪽 진영을 택한 이후라면 간혹 자신의 진영의 극단주의자를 접하게 되더라도 '저 쪽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간편한 논리로 대수롭지 않게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을테고, 반면 그 이후로도 상대 진영의 극단주의자들의 분탕질은 - 아마도 그런 부분을 일삼아서 소개하고 과장하는 동류 진영주의자들에 의해 - 점점 더 높은 빈도로 강하게 각인되고 있을테니까요.

따라서, 이러한 진영주의는 결국 필연적으로 정치적 환원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당이 주로 내세우지 않는 가치를 표방하는 상대당의 정책은 어차피 진심이 아닐 것이고, 설사 우리 당이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가치 - 예를들어 성소수자 문제 - 가 있다면 "그런 건 일단 저 쪽 당부터 심판하고 이야기하자"라고 간단하게 무지를 수 있으니 결국 무슨 이야기로 출발을 해도 결론은 "그래서 넌 어느 당을 찍을 건데?"가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지지 정당만 알고 있다면 사실상 모든 정치사회적 주제에 대한 그 사람의 입장을 꽤 높은 확률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민주주의적 정치 제도가 동작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 즉 가치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토론과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정당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4-5년에 한 번씩 기껏해야 너댓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유권자의 모든 가치관과 정치적 지향을 표현하라고 강요하는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과연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당 제도나 보통선거와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개념, 아니 어쩌면 대의민주주의자체에 대해 그 효용성을 반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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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0

  • fender
    21k
    2017-03-14 11:18:05 작성 2017-03-14 11:19:00 수정됨

    최근에 잠시 다른 커뮤니티를 기웃 거렸을 때 작성한 글인데, 이왕 정치 주제글에 덧글을 단 김에 이 곳에도 올려봅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다시 정치 사회에 대한 자주 글을 쓰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할 의욕도 없고, 그런다고 어떤 건설적인 토론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아마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시간이 나면 좀 더 차분하게 정리해서 글로 정리해볼까 하는 정도의 생각만 있네요.

  • 조프로
    1k
    2017-03-14 11:24:35

    온라인에서 정치사회에 관련된 얘기 90%는 억지가 포함된 개인적 화풀이인 것 같아요.

    저도 정치에 관심 많지만 온라인에서 그런 대화가 아예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합니다..ㅎㅎ

  • nusicaa
    2k
    2017-03-14 11:47:15

    정치인이 미래 자식들이 먹을 거리를 오늘 너에게 주겠다고 하면 대중이 표를 주는 것이 대중 민주주의이죠  

  • fender
    21k
    2017-03-14 11:48:15

    선인장함께// 저는 과두정이나 철인정치 같은 걸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본문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고 해도,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고 탄핵할 수 있는 나라가 차기 지도자의 이름을 TV에서 알게되는 나라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꽤 극단적 대안이 있기는 하지만, 굳이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았고 중국식 집단 지도체제를 포함한 기존의 정치 체계와 비슷한 모습은 아닙니다.

  • 늘근아빠
    3k
    2017-03-14 12:48:07 작성 2017-03-14 12:48:51 수정됨

    태권브이 컴플렉스 라고 아시는지요???

    태권브이는 그 자체로서 정의이고 태권브이의 모든 말과 행동은 정의롭다. 

    내가 악당을 물리치는 그 정의로운 태권브이다. 라는 정치인 역겹습니다. 

  • allgive2you
    3k
    2017-03-14 14:25:54

    저는 정당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만 보면 되는거 아닌지..

    내가 철이 없는건지..

  • byeworld
    3k
    2017-03-14 18:03:14 작성 2017-03-14 20:54:19 수정됨

    1. 본문에 대해..
    일단. 사회나 정치체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신 것에 대해 박수를 쳐드리고 싶군요.
    상당히 피곤한 일이고,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죠..

    진영논리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환원주의가 눈에 띄셨나보군요..
    환원주의라는 것이 단순화와 다른 분야를 통한 해결을 찾는 노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전체가 아닌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니
    사회와 결부될 때는 결합의 오류나 부분과 전체의 혼동 혹은 논쟁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지도 않나 싶습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은 진영논리와 환원주의가 나쁜 의도로 결합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나 우려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하신 두가지가 결합하여 프레임으로 작용할 때,
    그로 인해 생각의 범위를 좁히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경우를 접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죠.
    대표적인 진영논리인 지역주의와 그것을 자극해서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 '우리가 남이가' 발언은
    말씀하신 진영논리와 환원주의의 나쁜 결합이라는 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깊은 고민은 하셨지만, 뭔가 마무리나 탈고 같은 것이 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정제가 덜 된 느낌이랄까요.
    뭔가 좀 더 걸러지고 정제가 되었다면 좀 더 읽기 편한 글이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2. 댓글에서..

    제가 플라톤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읽은 플라톤의 국가와 다른 것 같습니다.

    내용이 긴 것 같아 댓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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