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체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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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16: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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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개발자가 되는 것은 원래 어렵습니다.


최근에 취준 하시는 분을 멘토링 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민을 여쭤보니 "평범한 개발자"가 되려고 하는데 너무 해야 할게 많다는 얘길 하시더군요. 정말 이걸 다 해야 하냐고, 막막하다고... 오늘은 이러한 막막함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1. 프로그래밍을 처음 할 때 느꼈던 막막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코드 중에 단 하나만 틀려도 프로그램 전체가 컴파일이 안되거나, 되더라도 의도한 대로 안 돌아 간다는 것이 제겐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컴퓨터가 켜져서 웹브라우저로 타자를 치는게 새삼 신기한 날들이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e-sport 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게임에 버그가 터졌을 때 욕하지만, 게임으로 스포츠를 한다는 사실이 제겐 경이롭고 기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이로움을 만들기 위해 막막해 하는게 돈을 받고 개발을 하는 평범한 개발자들의 숙명이고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쉽게 개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시간이 짧다고 치더라도, 그 코드가 컴파일 되고 패키징 된 후에, 사이닝 되고 배포되는, 그리고 결국 그게 실제 사용자의 손에서 굴러가기 위한 전 과정은 빡셉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에 책임을 지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지금 막막하신 것은 연차가 올라가도, 실력이 좋아져도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지지 절대 편안해 지진 않으실겁니다. 그저 받아 들이게 되는 것 같고요.


2. 그나마 개발은 낫습니다.


(어쩌다보니 최근 글이 다 비지니스 글인데...) 내가 그 막막함을 이겨내어 만든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돈 한 푼을 버는 것은 훨씬 막막한 일입니다. 사용자가 광고를 누르거나, 결제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에 의존해서 우리가 돈을 번다는게...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코드를 아주 잘 짜서 일정을 맞춰도, 결국 사용자가 선택해줘야 하는구나. 내가 기획자는 아니니까 (나중엔 기획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결국 회사 전체의 방향을 깊게 신뢰할 수 있어야 개발자로서 시간을 투자하고 열의를 다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걸 배웠습니다. 정말 이거야 말로 막막하더군요. 열쇠가 나 같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시장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노력을 해도 극복이 안될 것 같았습니다.


3. 이런 막막함이 싫어서 학계로 도망쳐 왔습니다. 그래도 앎은 쌓이니까, 막막함은 덜하지 않을까 싶었지요.


지금은 아직 박사를 받으려면 많이 남았지만, 하루하루 막막합니다. 학계에서의 성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그냥 뭔가를 더 알고 싶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내가 알던 것들도 모두 의심하게 되더군요. 앎이라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회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학계에 오고 알게 되었지만, 과학은 기존의 앎을 깨부수는 일이더군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게 틀릴 때 한 발자국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배웠던 것들을 느끼고 새로 공부하는 것들로 의심해 보면서, 지적인 막막함을 호기심으로 바꿔가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4. "평범한" 개발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게 수능처럼 줄세우기 시험이라도 보면 나을텐데, 개발자는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나 회사에서 번 돈을 분배 받는 식으로 월급을 받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내가 잘해도 회사가 비지니스를 실패하거나 환경이 변하는 것에 살아남지 못하면 회사가 깨집니다.


아시다시피, 특히 IT 업계는 정말 빠르게 변합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웹 표준이나 HTTP 같은 얘기만 꺼내도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나오기 전에는 아이폰은 잠깐의 열풍에 불과할거라는 얘길 했습니다. 10년전엔 IT 업계는 기피하는 업계였지만, 지금은 비전공자도 국비교육을 듣고 들어오고 싶어하는 업계가 됐습니다. 저에겐 이런 상황이 참 생경합니다.


이 변화는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예전엔 모두가 페이스북을 최고의 회사라고 여겼지만, 최근 메타 (전 페이스북) 가 신입사원들을 고용해 놓고 입사 첫날에 해고해서 Linkedin에 #MetaLayoff 라는 해쉬태그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AR/VR이 미래라고 했지만 Microsoft 는 HoloLens 팀을 해체 시켰습니다. 미래가 누구의 편일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평범한 개발자" 가 되는 것은... 진짜 어렵습니다.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개발자로 살아남은 업계 선배들을 보면 처음 시점에는 생각도 못했던 커리어를 밟고 계신 분들이 많고, 찐 프로그래머로 유명하셨던 분이 자긴 이제 코딩 안 한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답은 없습니다.


5. 어쩌라는거냐?


멀리 보고, 재미를 찾으시고, 이왕이면 기본을 튼튼히 하시길 권합니다.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에 컴퓨터공학이 인기 학과였던 적이 한번 더 있었습니다. 회사 이름에 닷컴만 붙이면 주가가 올라갔던 시기에, 결국 버블이 깨지면서 수많은 닷컴 회사들이 전세계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던 2000년대 중후반은 프로그래머가 3D 직종이었습니다. 저도 전자과가지 왜 컴공가냐는 소리 엄청 들었고요. 학교를 갔더니 다들 컴공에서 도망쳐서 전자과나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습니다. (이 친구들이 졸업할 시즌이 되니 샤오미가 나타나서 전자과는 취업이 안되고, 문과는 걍 취업이 안됐습니다...)


지금은 다시 컴공의 인기가 많습니다. 이 사이트에도 취업 때문에 코딩 시작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고 있죠. 지금이 닷컴 버블 떄와 다른 것은, 실력의 양극화가 무척 심하다는 겁니다.

잘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구글도 가고, 못하는 사람들은 구글링과 IDE 등 개발 환경이 좋아진 탓에 닷컴 버블 때의 엉터리들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요구하는 연봉의 베이스라인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비지니스 환경도 양극화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돈을 빼기 시작합니다. 꿈만 팔아도 되던 회사들에게 실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옥석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될만한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젝트가 어떤 위기에 처할지는 따져 봐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잘해야 합니다. 답은 없고, 막막합니다. 같이 막막한 처지에 제 의견을 드리자면...


개발을 이미 시작하셨다면, 후회 남기지 않도록 코딩 재밌게 하시길 바랍니다. 재미를 느끼셨다면 당신은 재능이 있습니다. 막막할 때가 있더라도, 잘 지나갈 겁니다.

개발을 아직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이게 정말 쉬운 직업이 아닙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잠깐 좋은 상황이고, 호시절은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다니던 직장 때려치고 국비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취미로 코딩 해보면서 재밌을 때 투자해 보는게 더 낫다고 봅니다)

개발을 이미 시작하셨는데 개발이 재미가 없으시다면... 소프트웨어 업계에는 개발자만 있는게 아닙니다. 매니저도 있고, Technical writer도 있고, HR도 있고, 다양한 직군이 있습니다. 다른 직군으로 넘어가는 것에 패배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당장 옮길 때 발생하는 손해에 민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 깁니다. (참고로 저도 개발 때려 쳤습니다.)


오늘은 좀 어두운 이야기이긴 한데, 너무 장밋빛으로 개발자들을 꿈꾸시지 않을까 싶어 적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개발자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을만한 직업은 잘 없고, 말은 저리 해도 내 실력은 어디 안 가니까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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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0

  • 힐더월드
    70
    2022-05-13 00:58:20

    와우 글 정말 잘 쓰셨습니다~ 입문자들에게 정말 좋은글일듯 하네요~^^


    현실적이고, 배려하는 마음씨가 뚝뚝 묻어나는 좋은글입니다...

  • DEVVY
    205
    2022-05-14 16:21:18

    감사합니다. 더 겸손해지고 열심히 공부해야겠군요 !

  • 왕큰새
    64
    2022-05-14 16:59:2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아일톤세나
    14
    2022-05-16 13:10:34

    좋은 자극이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siv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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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6 13:37:50

    "내가 알던 것들도 모두 의심하게 되더군요."

    요즘 가장 공감되는 문구입니다.

  • 조이캐슬
    19
    2022-05-16 13:48:56

    책 쓰셔도 될 것 같아요 +ㅁ+)b 잘 읽고 갑니다

  • ch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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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6 19:36:34

    코딩 재밌게 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핵심인것 같아요.



  • 오내가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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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10:15: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포메이토
    13
    2022-05-17 15:27:14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ilvertiger13
    11
    2022-05-19 15:10:47

    감사드립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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