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의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네요 ㅎㅎ 김치전 님께서 창업자 관점에서 어떻게 개발자의 RoI를 측정할 수 있는지를 여쭤보셔서, 그에 대한 저의 답을 써보려 합니다. (한 2-3일 정도 생각해 본 것 같네요)
0.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사업의 비지니스 모델입니다. (생각하다보니 개발자는 뒷전이 되더군요 ㅎㅎ)
여기서는 비지니스 모델을 "우리 회사의 목표가 실현되기 위한 과정에 어떻게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가설"로 정의하겠습니다. 말이 어려운데, 사업의 와꾸를 잡는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저는 성공의 척도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MAU, 회사 가치 평가 등의 정량적 지표와 우리 회사가 정말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었냐에 대한 정성적인 분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사랑하는 당근마켓이라는 회사를 평가해보면,
- 일주일에 1000만명 이상 사용하고, (Unique한 사용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이 스케일이겠죠)
- 가치 평가는 3조를 받고 있습니다. (2022년 1월 기준)
정성적인 평가를 하면,
- 기존에 없던 지역 기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잘 작동합니다.
- 당근 온도라는 평판 시스템이 잘 작동합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당근마켓은 성공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1.
여기서 수익에 대한 얘기가 없는데, "수익모델" 과 "비지니스 모델" 은 다릅니다. 비지니스 모델의 부분 집합이 수익 모델이고, 수익 모델은 비지니스 모델에 걸리는 제약 조건에 가깝습니다.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즉, 회사는 돈을 버는데, 그 이유는 비지니스 모델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최대한 많은 돈을 버는건 상장 후에도 배당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았을 때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RoI라고 하면, 이 수익 모델에 대한 얘기가 됩니다. 비지니스 모델을 돌리기 위해 어떤 자원을 넣고 그 자원으로 비지니스 모델을 굴리기 위한 자원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가설이 수익 모델입니다.
가장 수익모델이 간단한 페이스북을 보면, 페이스북은 광고를 팔아 돈을 법니다. (대부분의 수익이 광고입니다.) 광고를 팔기 위해, 페북은 개발자를 겁나 뽑고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합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를 분석하는 키는 MAU의 성장속도와 광고 매출입니다. 페이스북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 중 메이저한 두개는 1) 이미 너무 커버려서 MAU의 성장 속도가 둔화됐다. 2) 애플이 표적광고권한을 열었더니 광고의 표적을 맞추는 확률이 내려가 버렸다. 이렇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Meta Platforms로 사명을 바꾸고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1) 과 2) 가 해결이 안된 것도 있는데, 새로운 비전인 "metaverse로의 transformation"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습니다. 즉, 페북은 성공했던 회사지만 지금 성공한 회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정량적/정성적 두 측면 모두에서 위험이 큰 회사가 됐습니다.
2. 개발자 얘기를 안하고 왜 주가 얘기를 하고 앉아 있나 싶으실텐데, 이제 개발자 얘기로 갑니다.
전 글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개발 실력과 연봉은 턱걸이만 넘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다니는 신입 개발자와 SI 업체에서 잔뼈 굵은 개발자의 연봉이 큰 차이가 안난다고 해서 네이버 신입 개발자가 코딩을 더 잘하는게 절대 아닙니다. 그냥 네이버의 비지니스 모델을 수행하는데 그 신입 개발자는 당장이든 미래에 기대되는 퍼포먼스든, 그 연봉을 줘도 비지니스 모델이 굴러가기 때문에 그 연봉을 받는겁니다. 똑같이 SI 업체의 비지니스 모델을 굴리는데 그 연봉을 줘도 돌아가기 때문에 주는겁니다.
"실력이 더 높고 낮음은 상관이 없습니다. 비지니스가 굴러가는게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가 창업을 한다면 개발자에게 어떤 연봉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건 제 사업의 비지니스 모델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대기업, 중소 SI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겠습니다.
3. 시뮬레이션 1: 스타트업
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차린다면, 능력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얼마든 돈을 줄 수 있을겁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제약 조건 안에서.
현재 회사의 가치 대비 미래에 기대하는 가치의 상승폭, 예를 들어서 현재는 1000억 가치를 평가 받고 10억의 투자를 받아서 1%의 지분을 투자자에게 준 후, 내 목표 가치가 1조의 유니콘이라고 하면 10억 갖고 100억 만들어줄 사람을 찾을겁니다. 즉, 신입을 절대 받지 않고 기술적인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5년차 이상의 슈퍼 개발자에게 연봉 3억을 주고 3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고 할 수도 있겠죠. 더 현실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드니까 연봉 1억을 주고 스톡옵션을 1년에 2억씩 더 주는 식으로 갈 수도 있을겁니다. 이렇게 3년 후에 exit 하자고 하고요.
4. 시뮬레이션 2: 대기업
만약 제가 대기업 CEO가 된다면 (될 일은 없지만 ㅎ), 철저히 이 일은 CFO에게 맡길 것 같습니다만, 내가 결정해야 한다면 이미 연봉 테이블 있는 것에서 그냥 인재를 뺏기지 않는 선에서의 보너스를 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대기업 CEO 입장에서는 사원 대리급에게 주는 연봉은 돈으로 안보이는 돈인데, 이미 상장도 했으면 수익률이 주가에 영향을 줄거라 그렇게 혁신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주는 조직이 없는 이상 대규모 연봉 인상은 안해줄 것 같습니다. (비상장 자회사라면 해볼 수도 있겠네요 ㅎㅎ)
5. 시뮬레이션 3: SI 업체
제가 SI 업체 사장이 된다면, 즉 외주만 받아와서 그걸 해결해서 먹고 사는 식이라면, 그 사람하고 인간관계 틀어지지 않을 수준으로 돈을 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은 나도 내 가치를 인정 받고 싶을거라, 외주로 받은 돈이 1년에 10억이면 그 중에 5억은 일단 제가 킵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연봉은 1억 정도 가져가고, 4억은 재투자를 위해 고민을 해볼 것 같습니다. 나머지 5억을 뿌릴텐데, 아마 SI에서 잔뼈 굵은 개발자에게 두세명 뽑아서 연봉 7천 정도 주고, 나머지는 연봉 3천에서 4천 사이로 신입들의 머리수를 늘린다음 어떻게든 외주 데드라인 맞추도록 갈굴 것 같습니다. 정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킵해놓은 4억에서 재하청을 줄 수도 있겠죠.
6. 결론
저도 엔지니어이고, 저 세 종류의 회사에 모두 다녀본 사람입니다. 기술을 저도 사랑하고, 엔지니어들이 정당한 평가 못받는거, 저도 싫습니다. 언어 하나 잘하고 프레임워크 하나 잘다루는게, 코드 깨끗하게 짜고 기술부채 최소화 하는게 어려운 일인거 아주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지니스 모델이 후지면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가 없고, 높은 레벨의 엔지니어링도 해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지니어 분들이 최소한 좋은 "비지니스 모델" 을 가진 회사를 가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익 모델이 아닙니다)
SI 중에서도 좋은 SI 회사가 있습니다. 수익 모델은 다른 SI랑 같지만, 자체 기술력을 쌓아서 더 효율적이고 빠른 속도로 수주한 프로젝트를 끝내거나, 반대로 수주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기들 기술력을 쌓는 식입니다. 보통 이런 회사들은 큰 비전이 있고, 결국 어떤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 시켜서 진정한 테크회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비지니스 모델이 좋은 곳이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코딩 잘하는 것, 물론 중요한데, 비지니스 모델에 대한 평가에 감이 없으시면 저평가 당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RoI는 실력에서도 나오는 것이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비지니스 모델 돌아갈 정도면 어느정도 이상의 실력은 사실 필요없습니다. (그게 필요한 회사들은 있기는 합니다만, ASML 같은 느낌입니다. 잘할거면 세계 최고로 진짜 겁나 잘하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읽으시면서 기분이 나쁘실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명확하게 쓰기 위함임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