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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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00:27:21 작성 2021-12-27 00:28:50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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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커리어의 선택지에서 고려하는 것: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커리어에서의 선택에서 고민이 많으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제가 커리어에서의 선택을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공유합니다.


A와 B 중 어떤 길로 갈까의 기로에서, 항상 제 선택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던 것 같고, 후회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1. 학석사를 조기졸업해서 5년 안에 끝내고, 빠른 년생 버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군 문제를 끝낼 시점이 되면 27살이 되더군요. 3년차에 들어설 때 고민이 컸습니다. 업무도 익숙해 졌고, 따로 배울게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직을 하자니 한국 내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찮기도 하고요.

결국 3년차 들어서면서 (그 전부터 사이드로 논문을 써오긴 했지만) 많은 대학에 컨택을 하고, 영어 점수를 맞춰서 박사 유학을 지원했습니다.

이때 주변에서 엄청난 만류가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이고, 당시 데이터 엔지니어링 직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았으니까요. 그리고 박사를 받으면 확정적으로 30대 초반이 될텐데, 결혼은 언제할거냐 등등 여러 이야기가 있었죠.


그래도 저는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제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안보였습니다. 큰 물에서 놀고 싶었고요.


사실 가서는 엄청난 후회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내가 영어도 되게 못했고, 사람들에게 나대는 것도 못했고, 논문을 쓴다고 썼지만 진짜 가치있는 논문을 써보는 경험은 못했었거든요. 생활의 퀄리티는 회사 다닐 때보다 확연히 떨어지고, 일요일 빼고는 계속 연구실 집 연구실 집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근데, 저는 이 와중에 너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 내가 성장하는게 느껴졌고, 매일매일 내가 모르는 것들을 맞딱 뜨리고 싸워서 이겨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내가 잘 할 수 있게 되는걸 느꼈어요. 한국 친구들하고 얘기하면 누구는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하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데, 저는 오늘 짠 디바이스 드라이버가 성능이 잘 나오냐 안나오냐가 가장 큰 문제였거든요. 나이에 따른 구애를 받지 않고 엔지니어링을 맘껏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박사 과정 기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2. 두번째 위기는 빅테크에 취업한 후에 발생했습니다. 박사를 받고 세계적인 기업이랍시고 들어와 봤는데, 역시나 직장은 직장인지라 루즈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또 사내 정치는 만연하고, 보이지 않는 인종적 한계 같은 것도 느껴지고…

돈은 정말 많이 받았지만, 하루하루가 재미가 없었습니다. 역시나 내가 여기 계속 있는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고요.


그러던 와중, 저희 분야 레전드로 꼽히는 분이 메타버스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들었고, 학회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보니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더라고요. 게다가 다국적 스타트업이고, remote로 일하는 것을 장려하기 때문에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더 매력적인건, 이전 회사에서는 하나의 role을 수행하는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였다면, 이 회사에서는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역시나 이 과정에서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때도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 두냐, 미국 영주권을 따놓고 왜 한국 오냐, 연봉을 왜 포기 하냐, 같은 얘기를 들었지만, 선택을 해서 한국행을 택했고,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결과가 좋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스타트업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등따숩게 있었다면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싶어 하던 것들을 배우고 있고, 특히 큰 기계의 부품이라면 몰랐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 투자자와의 관계 등 엔지니어로서 살면서 접하기 어려운 사정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아나요. 대박나서 스톡옵션 행사를 하면 한몫 쥘 수도 있겠죠.


3.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하던 때는 모두가 프로그래밍을 만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3D 업종이고,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안준다고요.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다들 프로그래밍을 하려고 몰려 들고 있는 상황을 보면 참 생경합니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요?


나름 아마추어 + 프로로 20년 정도 이 판을 바라보며 느끼는건, 업계는 계속 흥망성쇠를 거듭한다는 겁니다. 그 와중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아예 새로운 분야를 선택하고 개척해 가며 커리어를 이어가더군요. 이 관찰에서 저는 결국 실력을 쌓는게 지적 노동자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느꼈고, 그 실력을 쌓는데에는 역시 노력만큼이나 나를 성장 시켜줄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계신 환경이 성장에 유리한 환경인가요? 편안하고 뭔가 다 알 것 같다면, 아마 아닐겁니다. 성장 시켜주는 환경은 항상 불편하고, 사람들에게 저평가 되어 있고, 피곤하게 만들더군요. 재밌는건, 그 환경에서 성장한 후에는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해 “넌 비범한 사람이니까 그걸 해낸거지” 라고 평가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 환경이 절 비범하게 만든 것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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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3

  • 이상해씨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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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7 13:06:58

    21년을 마무리하며 고민했던 내용들이 담겨있네요.

    이 글을 좀 더 미리 봤다면 제 선택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이 아직 불편하다면 여기서 성장할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는것이겠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Qs
    911
    2021-12-31 19:01:01
    좋은글 감사합니다
  • OKKY
    3k
    2022-01-01 02:37:48
    해당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사는얘기에서 칼럼로 이동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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